최초의 국산 독자모델, 현대자동차 '포니'

2011/11/15

 

◇ 포니,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

 

1967년 설립되어 미국 포드자동차회사와의 제휴로 ‘코티나’ 자동차를 처음 조립 생산하기 시작한 현대자동차는 1973년부터 최초의 국산 독자모델 ‘포니’의 개발에 나서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5개년 경제개발이 한창 진행되던 시절이었는데,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는 ‘장기 자동차공업 육성계획’의 일환인 부품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 계획이 바로 한국자동차 고유모델 개발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토종 디자인 1호인 ‘포니’ 자동차의 탄생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 때 현대자동차가 독자 모델의 개발을 착수하려고 하자, 이웃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은 미친 짓이라며 비웃었다. 더구나 당시 현대자동차 개발팀들도 대부분 반대 의견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완전국산화 추진지시에 따라 현대 개발팀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립생산만 하던 현대자동차는 포드와의 독자모델의 개발사업 추진이 허사로 돌아가자 허탈에 빠지게 된다. 당시의 현대자동차 개발팀은 스타일링 디자인에 대한 업무조차 수행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자동차 디자인의 선진국인 이탈리아로 갈 수밖에 없었다. 디자인을 ‘도안’이라고 말하던 그 시절이라 개발팀에는 아쉽게도 디자이너는 없었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현대자동차는 이탈리아의 베르토네, 피닌파리나, 이탈디자인 등과 만난 결과, 이탈디자인의 ‘조르제토 쥬지아로’에게 토종 아닌 토종디자인의 스타일링을 맡기게 된 것이다.


◇ 초기의 포니 개발 컨셉

 

초기의 ‘포니’의 개발 컨셉트는 ① 4도어 세단 LHD ② 1200~ 1400 cc급 5인승 ③ 휠베이스 2,340 mm ④ 새로운 스타일로 미국 및 일본의 유형 ⑤ 작동부분은 기존부품을 사용 ⑥ 1일 1교대 8시간 작업으로 100대 생산 ⑦ 일본표준규격에 만족하는 설계기준 등 제원에서 디자인 생산까지 간략하지만 비교적 포괄적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그러나 디자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시절이라 전적으로 이탈디자인의 쥬지아로에 의존하였다. 이러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디자인에서 1973년 9월 스타일링 디자인을 시작하여 10월 4종류의 스케치를 완료하여 품평을 거쳐 디자인을 결정한 후 시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델은 1974년 10월 30일 제55회 이탈리아의 토리노 모터쇼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1975년 12월 울산공장에서 생산에 들어간 포니는 ‘꽁지 빠진 닭’같다는 소비자의 반응처럼 해치백 스타일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승용차들이 거의 노치백인 세단형이었기 때문인데 신선한 느낌이 들어 곧 인기리에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스타일링 디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면부의 그릴은 격자형으로 한국의 창살문양의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당시 컬러범퍼가 없었던 시절이라 범퍼는 검정색으로 사이드 캐릭터라인과 연결되면서 현대적 감각을 주었고, 긴 보닛은 롱 노우즈 타입으로 기능감과 안정감을 주었다.


◇ 포니가 이후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 끼친 영향 
                               

포니 승용차는 우리나라의 취향과 체격, 그리고 도로사정에 맞는 경제형 자동차인 데다가 내구성이 좋아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끌었으며, 마이카시대를 열어준 차라 할 수 있다. 국산화를 90%나 이룩한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 승용차인 ‘포니’가 나온 뒤 당시 승용차 시장의 80% 정도였던 중형차는 밀려나면서 자연스럽게 소형차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조랑말’ 이라는 뜻을 가진 ‘포니’ 자동차개발은 야심을 가지고 소 1,000마리를 몰고 북한을 다녀 올 정도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성격만 보더라도 능히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과감한 도전정신의 회사 분위기의 현대자동차는 과감한 투자와 연구개발로 순수 토종 ‘포니’자동차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지금 세대들은 ‘포니’라는 이름이 생소하겠지만, 순수 토종디자인을 열게 한 매우 중요한 차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현대자동차 독자의, 나아가 우리나라 순수의 힘은 아니었지만 세계에 고유모델을 선보인 것만으로 국내자동차 디자인이 진정으로 눈을 뜨게되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자동차를 수출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 당시 현대식 공장을 갖추고 1962년에 조립 생산된 최초의 차인 ‘새나라’와 중형차시장의 3파전을 이루었던 신진자동차의 ‘코로나’, 현대자동차의 ‘포드 20M’, 그리고 아시아자동차의 ‘피아트124’ 등 모두 둥글둥글한 곡선디자인에 익숙해 있었는데 이러한 취향을 직선형 디자인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 자동차가 바로 ‘포니’인 것이다.


◇ 미국에서는 포니 개발을 반대했다는 사실!

 

1977년 리처드 스나이더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고 정주영 현대명예회장과 조선호텔에서 만나 "자동차 독자개발을 포기하면 현대가 조립생산을 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중동건설에서도 현대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었다고 한다. "만일 이 제안이 발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현대는 앞으로 미국과 한국 양국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게될지도 모른다"고 정 명예회장을 압박하기도 했다. 물론 정 명예회장은 "제안은 무척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자동차산업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다. 건설에서 번 돈을 모두 쏟아 붓고 실패한다 하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 포니의 최초 모델은 사실 2도어 쿠페였다.


놀랍게도 당시 현대자동차의 자동차 디자이너였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처음 디자인한 포니의 모델은 무려 2도어인 쿠페였다. 1976년이라는 시대에 맞지 않을 정도로 혁신적이고 앞선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아직 쿠페를 생산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디자인을 고쳐 4도어 세단형을 1세대 모델로 정하게 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포니 쿠페의 디자인을 이후 독일의 DMC에서 구매했고, 그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차가 바로 영화 벡투더퓨처에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드로이안’ 이라는 스포츠카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아쉽지만, 사실 그 당시에 쿠페를 생산했다면 과연 잘 팔렸을까?


 ◇ 국민만화 ‘달려라 하니’의 비밀

사실 국민 만화인 ‘달려라 하니’의 원제는 ‘달려라 포니’ 였다는 사실. 만화 제작사 측에서 ‘포니’로 저작권 등록을 하려 했으나 ‘자동차 이름이 연상되어 간접광고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심의에서 거부되었고, 그래서 작가가 생각해 낸 이름이 ‘하니’ 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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