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국산자동차 '시발(始發)'

2012/05/07

 

2011년 9월까지 국내 자동차 누적 생산 대수가 7000만대를 돌파했다. 지식경제부는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생산대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이 국내 산업 전반에 전·후방 연관효과를 창출하며 국가경제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음을 나타낸다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생산된 자동차가 무엇일까? 바로 시발 자동차이다.

시발자동차는 6.25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55년 8월에 만들어 졌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미군을 통해 들어온 군용 차량들은 물론이고, 그 이전까지 여러 경로로 이 땅에 들어와 운행되고 있던 많은 자동차들이 파괴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파괴된 자동차들의 부품을 활용하여 운행 가능한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자동차 재생 산업이 활기를 띠었다. 시발자동차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탄생했다. 그 최초의 자동차는 을지로 천막 안에서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3형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시발자동차에는 4기통 1323cc 엔진이 탑재되었는데, 그 엔진은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엔지니어 김영삼이 제작하였다. 그가 없었다면 시발자동차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대를 생산하는데 4개월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값이 8만 환으로 고가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1955년 10월 1일부터 12월 21일까지 광복 10주년을 기념해 창경원에서 산업박람회가 개최되었는데, 박람회 폐막식에서 시발자동차가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산업박람회를 계기로 소위 ‘빽’을 써야만 살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늘어났고, 상류층 사회에서는 이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한 ‘시발계’까지 등장하였다. 특히 영업용 택시로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시발자동차는 ‘시발택시’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시발자동차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이승만 정부가 1957년 5월 8일 자동차의 수를 제한하는 긴급조치인 5·8 라인을 발동 하였고 5·16 쿠데타 이후 일본 이스즈와 제휴하여 대형버스 및 트럭을 도입 생산하려고 무리하게 투자하는 바람에 회사가 위기에 처했다. 그 뒤 정부 보조금이 중단되고 새나라자동차가 생산 되면서 시발의 승용차 모델들은 경쟁력을 상실했고, 정부에 제출한 외자유치 건의도 반려되면서 결국 1963년에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시발자동차가 최초의 국산자동차라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 우리도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었고, 오늘날 자동차 강대국의 서막을 열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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