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환율 조작국' 카드 … 어느 나라에 불똥 튈까

2017/02/27

 

지난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당면한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미국 재무부가 올해 4월 의회에 제출할 환율 보고서이다. 4월에 만기 도래하는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에 대한 금융시장의 우려와 함께, 그 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만에 하나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에 대한 걱정으로 연초부터 한국 경제에 '4월 위기설'이 등장하고 있다.

 

정책 당국은 미국이 우리를 당장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실제 지정되면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 이 때문에 적은 가능성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 우리가 직접 해당하지는 않아도 중국이 환율 조작국에 지정돼 수출에 타격을 입게 되면, 중국에 중간재와 부품을 수출하는 우리 역시 그 부정적 효과에 휘말릴 가능성은 크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때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어, 그 유탄을 우리가 맞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외신에서 한국과 대만이 환율 조작국 지정 대상일 수 있다고 보도하기까지 했다.

 

환율 조작국 아니어도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부담

 

환율 조작국을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환율이 자국에 유리하도록(저평가된 통화 가치를 통해 수출을 증진하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조작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문제는 환율에 인위적 개입을 하지 않아도 대미(對美) 무역수지 불균형이 확대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환율 조작국 이슈가 갈등 사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율을 조작하지 않아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대상국 중 우리나라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부담이다.

 

제2기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한 해인 1985년 9월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바 있다. 선진 5국(G5) 재무장관 회의에서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를 강제적으로 강세로 전환시키는데, 이때도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일본의 인위적 환율 조작이 문제가 아니라, 달러 강세와 이에 따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근본 원인이었다.

 

'미국 달러화 이외, 다른 통화의 질서 있는 가치 상승이 필요하다'는 당시 결론은 엔화 강세로 이어졌고 일본의 수출이 무너지면서 일본 경제에 치명적이었다. 당시 일본 재무부장관이었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도 플라자 합의가 '잃어버린 20년'의 신호탄이었음을 알았다면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출발은 미국 경상수지 적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가 형성되어 1970년대 초반까지는 달러에 대해 다른 나라 환율이 모두 고정됐지만, 그 뒤엔 국가 간에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고 환율이 시장에서 변동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 이러한 변동환율제 환경에서 국가 간에 특정 환율에 자발적으로 합의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환율 수준에 따라 수출 경쟁력이 결정되어 특정 국가의 경제적 이득과 손실이 근본적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시 미국은 수입이 수출을 압도하며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서 달러화 강세를 막아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리는 일이 절박했다. 제1기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하던 1981년까지 미국 경상수지는 균형이었고, 심지어 제1·2차 석유 파동으로 경상수지가 악화됐던 때도 GDP(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은 0.5%(1972년), 1%(1978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플라자 합의가 있었던 1985년에는 적자가 3%에 육박했다. 일본이 환율을 조작해 엔화 약세를 추구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일(對日) 적자를 중심으로 무역수지 불균형이 심했기 때문에 엔화 강세를 만드는 게 주요 목표가 되었다.

 

레이거노믹스로 유발됐던 미국 경상수지 적자

 

당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악화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레이건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와 정부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이다. 미국이 정부 지출을 늘리자 수입이 급증했는데, 여기에 상응할 정도로 다른 나라에서 미국 제품을 구입해 주지 않으면 수출은 늘지 않아 경상수지 적자는 심화된다.

 

둘째는 미국 정부가 적자 재정 때문에 국채 발행을 늘리면서, 돈 수요가 늘어나 이자율이 상승(채권 가격은 하락)했기 때문이다. 즉 오른 금리 때문에 해외에서 미국으로 자금이 유입되면 달러 가치는 높아지고, 그 결과 수출 경쟁력이 약해져 경상수지 적자는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트럼프노믹스는 레이거노믹스의 재판인가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내세우는 대규모 감세와 지출 확대 정책이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때와 비슷하기 때문에 달러 강세와 경상수지 악화라는 플라자 합의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 미국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자 합의는 이미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된 후 제2기 레이건 행정부 출범 이후에 이루어졌지만, 역사적 경험을 인식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펼치면서 경상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 달러화 강세를 막는 조처를 함께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수출 경쟁력 회복과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내걸고 있어 이를 위해서도 달러화 강세는 막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건 행정부 때처럼 경상수지 악화를 기다렸다가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 부양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달러화 강세를 막기 위한 환율 관련 압박을 선제적으로 가하거나 부양책과 동시에 취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환율 조작국 지정은 무조건 피하고 환율 급변 가능성에 대비해야

 

환율 조작국 지정은 무조건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외환 당국이 적극적으로 우리 입장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만에 하나 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잘못된 판단이라는 근거를 분명하고 신속하게 제공해야 한다. 실제 외환시장 개입 여부도 중요하지만 대미 무역 흑자가 핵심이기 때문에, 대미 수출과 상응해 수입도 함께 늘리며 상호 호혜적으로 경제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확대 지향적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개별 기업들은 만에 하나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급변할 수 있음을 고려해 자금 조달과 부채·자산 관리에서 환율 변동성 증가에 대비한 위험 관리를 강화하고, 무역 제재와 환율 이슈 등에 의해 수출 환경이 악화되고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음을 고려해 대응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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